서기 595년에 김유신이 탄생할 즈음이 되자 대지진이 터져 쓰나미가 고구려 해안가에 몰려오니 중국 수나라의 졸개이자 속국屬國인 고구려의 왕 고원(영양왕) 놈이 크게 놀라다.
서기 595년에 김유신이 탄생할 즈음이 되자 대지진이 터져 쓰나미가 고구려 해안가에 몰려오니 중국 수나라의 졸개이자 속국屬國인 고구려의 왕 고원(영양왕) 놈이 크게 놀라다.
서기 595년에 김유신이 탄생할 즈음이 되자 대지진이 터져 쓰나미가 고구려 해안가에 몰려오니 고구려 왕 고원(영양왕) 놈이 크게 놀라다.
(내가 그린 그림)
====테마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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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영양왕 제위 6년 서기 595년
고구려의 경계 요동반도나 혹은 동해안에 거꾸로 흐르는 물 즉 쓰나미가 있었다.
그리고 이 즈음 고구려에서는 남자가 여자 행세하고, 여자가 남자 행세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던듯 하다.
영양왕이 예언자로 하여금 점을 치게 하였다.
지금이야 예언이 미신으로 취급되지만 성경 다니엘서를 봐도 고대 근동의 위대한 정복자 '네오-바빌로니아'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 조차
신비한 종말에 대한 예언 계시의 꿈을 꿨고, 이를 해석해준 바빌론 현자 학교 학생 출신인 유대인 벨트사살(=다니엘. 이 자는 해리포터의 원조 이다.)에게 절을 할 정도로 당시에 예언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중요한 것임은 분명하다.
타츠키 료는 서기 2025년에 일본에 대지진이 터져서 일본이 가라앉는다고 예언하였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김유신이 탄생할 즈음 그러니까 서기 595년 그런즉, 고구려 영양왕 제위 6년이 되자
대지진이 터져 쓰나미가 고구려 해안가에 몰려오니 고구려 왕 고원(영양왕) 놈이 크게 놀랐다고 한다.
고구려 왕 고원(영양왕)은 수나라의 대규모 침략을 물리쳤으면서도 수나라 땅으로 한 발자국도
쳐들어가려고 하지않고 오히려 수나라에게 "똥같은 땅의 신하를 어이하여 괴롭히시옵니까"하고
빌빌거리는 등신같은 놈이었다.
고구려는 요동,현토(요동반도),낙랑(평안도),대방(황해도)의 중국 한(漢)나라 계 호족들을 문신文臣으로
토착 고구려인들은 무신武臣 이렇게 2개의 축으로 삼아 그 위에 고구려 왕이 군림하는 체제였는데.
마치 서기 11세기의 거란 제국을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요나라 공주 무덤 발굴 결과, 요나라 황족 야율씨는 고구려 사람이라는 묘지명이 적혀있음이
확인되었다. 실제로 요나라는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스스로 주장했음은 이미 서희 때의 소손녕의 말로
다 증명되는 것이다.
그리고 거란의 조상은 비려이고 비려는 선비족인데. 그 유명한 모용씨도 선비족 그러니까 비려족 중의 한 일파이다.
광개토비를 보면 광개토가 즉위하고나서 얼마 안되어 비려가 모용씨 빼고 전부 고구려를 따랐음이
적혀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모용씨의 한화漢化 정책이 너무 극심하고 정도가 지나쳐
약탈을 생업으로 삼고 살던 비려족들이 모용씨에게 짜증이 엄청 난거 같다.
그렇게하여 광개토의 위대한 정복 전쟁이 가능하게 되었으니 광개토 군대 보,기 5만의 상당수는 아마 비려족의
타초곡(打草穀) 기병들이었을 것은 어렵지않게 짐작이 가능한 것이다!
모용씨의 정권은 만주 서쪽 요서 지방에 있었는데. 그들은 하북 베이징,요서,창려,요동,현토,낙랑,대방의 중국계 호족들을 신하들로 삼고 유주(하북성)와 평주(유주에서 분할된 요동,현토,창려,낙랑,대방) 일대를 호령하고 있었다.
모용씨 정권의 주축 세력은 부여씨 호족이었고 부여씨 호족의 일부가 바다를 건너 해적이 되어서
한강 유역의 마한 소국 백제의 신지(대족장) 자리를 탈취하고 최초로 백제의 왕이 되어서 마한 54국과 변한 12국을
다 평장하고 '쿠다라-미마나 연합 제국諸國'을 세웠다. 그렇게 한 자가 바로 '여구(餘句)'였으니 성씨는 여씨 즉 부여씨이고(부여씨를 짧게 '여'씨라 부른다.) 여구 이 자가 일본서기에서는 '오구나 타케루'란 미소년 닌자로 나온다.
여하튼 모용씨 정권 그리고 부여씨 호족이 여구와 함께 요서에 세운 '진평군'이란 대기업 복합 단지(군수공장과 군함 제작 항구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인지 그 땅이 '숙군宿軍'이라 불렸다. 즉 군대를 숙박시켜
정비하는 곳이란 뜻인 것이다.),
다시 고구려 얘기로 돌아오자.
정부 구성 시스템이 그 꼬라지였음은 평안도,황해도의 서기 4세기~서기 6세기의 고구려 고분 벽화들로
다 드러나는데.
그 고분 벽화들은 죄다 돌방 무덤들에 그려진 것들이고 돌방 무덤들은 전부 한漢나라 사람들이 만든 것들이며
고구려 사람들은 그런 무덤을 안 쓴다.
고구려인들은 돌들을 무수히 쌓아올린 흙계단 지구라트나 , 계단식 지구라트에 묻히지
온통 한漢나라의 신들과 신선들이 그려진 그런 기분 나쁘고 추악한 중국 한漢나라 돌방 무덤들에 묻히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돌방 무덤들은 싸그리 요동,현토,낙랑,대방에 포진해있었다.
그래서 정부 구성원이 그 꼬라지인 이상 서토로 한 발자국도 쳐들어갈 수 없는건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런 정부 구성원의 시스템은 중국이 분열되어있을 때, 그리고 광개토같은 위대한 정복자가 있을 때나
좋은 것이었지.
위대한 정복자가 사라지고나면 그저 분열된 중국 각각에 조공 바치고, 정복한 영토 유지하느라 끙끙대는
등신같은 상태로 전락하는 것이고,
중국이 하나로 통일되면 그것은 오히려 족쇄로 작용하게되는 것이다.
//삼국유사 사료
"나라의 경계에 거꾸로 흐르는 물이 있어서 혹은 숫컷과 암컷이 자주 바뀌는 일이라고도 한다 왕이 그에게 이에 대한 점을 치게 하였습니다. [추남이] 말하기를 ‘대왕의 부인께서 음양의 도를 역행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징조가 나타난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대왕이 놀라고 괴이하게 여겼으며 왕비도 몹시 노하여 이것은 필시 요사한 여우의 말이라고 하며 왕께 고하기를 ‘다른 일로써 그를 시험하여 말이 맞지 않으면 중형에 처하라.’ 고 하였습니다. 이에 쥐 한 마리를 함에 담아 두고, ‘이것이 무슨 물건이냐?’ 고 물었습니다. 추남이 나와 말하기를 ‘이것은 반드시 쥐인데 그 수가 여덟 마리입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말이 틀린다 하여 죄를 씌워 죽이려 하니 추남이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죽은 후 대장이 되어 반드시 고구려를 멸망시키리라.’ 하였습니다. 추남의 목을 베고 쥐의 배를 갈라 그 안을 보니 [새끼] 일곱 마리가 있어 그제야 그의 말이 적중했음을 알았습니다. 그날 밤 대왕께서 추남이 신라 서현공(舒玄公)의 부인 품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고, 여러 신하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다 ‘추남이 맹세를 하고 죽더니 과연 그러합니다.’ 고 하였습니다. 我國群臣曰 ‘新羅庾信是我國卜筮之士楸南也 古本作春南誤矣.’. 國界有逆流之水 或云雄雌尤反覆之事.使其卜之. 奏曰 ‘大王夫人逆行隂陽之道其瑞如此.’ 大王驚恠而王妃大怒謂是妭狐之語, 告於王 ‘更以他事験問之失言則加重刑.’ 乃以一鼠藏於合中問 ‘是何物.’ 其人奏曰 ‘是必鼠其命有八.’ 乃以謂失言将加斬罪, 其人誓曰 ‘吾死之後願爲大将必滅高麗矣.’ 即斬之剖鼠腹視之其命有七, 於是知前言有中. 其日夜大王夢楸南入于新羅舒玄公夫人之懷, 以告於羣臣皆曰, ‘楸南誓心而死是其果然.’ "_삼국유사 기이편 김유신전
서기 2024년 1월 1일이 되자 일본 관동 지방에 진도 7이 넘는 대지진이 터지고 그 쓰나미가 조선 땅의 동해안에 밀려오니
이는 통일의 징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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